내부 통제와 플랫폼의 법적 책임: 기술의 진보와 법적 신뢰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빗썸에 대한 현장 점검을 넘어 본격적인 검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플랫폼의 내부 통제 실패에 있습니다.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의 시스템은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즉시 기록되는 “온체인(On-chain)” 방식이 아니라,
거래소 내부 장부의 숫자만 수정하는 “오프체인(Off-chain)”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거래 속도를 높여주지만, 전산상 실수나 시스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 “유령 가상자산”이 생성되어
시장 전체를 마비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금융 신뢰의 본질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라스 다이아몬드는 “위임된 감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금융기관은 투자자를 대신해 차입자를 감시하는 필수적 역할을 수행하여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고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가상자산 플랫폼 역시 단순한 중개인을 넘어, 디지털 자산의 무결성을 지키는 “감시자”의 역할을 위임받은 존재입니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플랫폼이 짊어져야 할 위임된 감시의 책임은 무거워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술적 오류” 또는 “실수”라는 해명 뒤로 숨는 것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의 정합성은 법적 통제와 기술적 진보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삼성증권에서 빗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플랫폼 화면에서 마주하는 숫자가 때로는 모래 위에 지어진 신기루일 수 있음을 아프게 일깨워줍니다.
로버트 실러 교수는 시장의 거품과 붕괴가 인간의 심리와 서사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의 숫자가 현실의 자산을 잠식하는 광경을 보며,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풍요만큼이나
그 신뢰를 담보할 제도적 장치의 성숙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법은 기술의 뒤를 쫓는 그림자가 아니라,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합니다.
유령 자산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 자본시장이 진정한 신뢰의 대지 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다 엄격한 내부 통제 기준과 법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숫자”를 “믿을 수 있는 가치”로 바꾸는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