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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변호사가 전하는 “유령 가상자산의 데자뷰”
등록일 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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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법 칼럼
가상자산
내부통제
형사책임
김형준 변호사가 전하는 “유령 가상자산의 데자뷰”
- 삼성증권 사건과의 비교를 통해 본 빗썸 사건에 대한 법적 고찰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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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안개 속에 가려진 숫자의 실체
금융의 바다는 거대한 데이터의 파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화면에서 마주하는 숫자는 단순한 픽셀의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시간이 응축된 “자산”의 증표입니다. 그러나 가끔 이 바다에 짙은 안개가 끼면, 존재하지 않는 섬이 지도로 나타나듯
“유령 자산”이 출현하곤 합니다. 2018년 삼성증권 사태가 우리에게 가공의 숫자가 가진 파괴력을 보여주었다면,
최근의 빗썸 사건은 그 공포가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영토에서도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대 금융 시스템은 고도로 전산화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정교함 속에 치명적인 취약성을 품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실제 자산의 존재 여부를 검증하기 전에 “장부상의 기록”만으로 거래를 허용하는 순간,
금융의 근간인 집단적 신뢰는 위기에 처합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전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돈은 궁극적으로 신뢰의 문제이며, 이 신뢰는 금융 시스템의 회복력,
현대 경제를 지탱하는 원활한 결제 흐름 등에 기초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빗썸의 사고는 이 신뢰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습니다. 담당 직원이 이벤트 당첨자 249명에게 리워드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원” 단위를 “비트코인(BTC)”으로 잘못 입력하는
“팻 핑거(fat-finger)” 오류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로 인해 빗썸이 실제 보유하고 있던 약 4만 6천 개의 비트코인보다 훨씬 많은 양이
시스템상에서 생성되어 무작위로 뿌려졌습니다. 이른바 “유령 비트코인” 사태입니다.
다행히 빗썸 측의 빠른 대처로 오지급된 코인의 99.7%가 회수되었다고 알려졌으나,
일부 이용자는 짧은 틈을 타서 지급받은 비트코인을 현금화에 성공하며 시장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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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의 ‘유령 주식’ 사건과 빗썸의 ‘유령 비트코인’ 사건의 형사 책임 비교
두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자산이 전산 오류로 발행되고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고찰을 위한 현미경을 들이대 보면, 적용되는 법리와 처벌 가능성에는 복잡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대법원 2022. 3. 31. 선고 2020도11566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20. 8. 13. 선고 2019노753판결 참조).
가. 자본시장법상의 ‘부정한 수단’ 해당 여부
삼성증권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직원들의 주식 매도 행위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제178조 제1항 제1호가 정한
“부정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에게 입고된 주식이 유령 주식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즉시 매도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시장의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해당 주식이 정상적인 자산이라는 오인을 불러일으키는 위험을 제공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특히 대규모 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 및 주식결제 이행의 혼란은 피해 회사의 일반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손해로 전가되었기에,
이를 사회통념상 부정한 수단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빗썸 사건은 사정이 다릅니다. 가상자산은 아직 자본시장법이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시장 질서를 교란한 행위라 할지라도, 현행법 체계하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에 한계가 명확합니다.
나.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성립 여부
컴퓨터등사용사기(형법 제347조의2) 적용 여부입니다. 삼성증권 사건에서 법원은 오입력된 주식에 대해 매도주문을 제출한 행위만으로는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시스템이 허용한 절차에 따라 매도 버튼을 누른 행위 자체를 권한 없는 정보 입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엄격한 해석입니다.
빗썸 사건의 이용자들 역시 거래소 시스템 내에서 지급된 자산을 매도한 것이기에, 이와 유사한 법리적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다. 업무상 배임 및 신임관계의 유무
이제 업무상 배임 이슈입니다. 삼성증권 사건의 피고인들은 회사의 직원들로서 “우리사주 배당”이라는 업무 연관성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들이 회사의 사고 수습을 도와야 할 신의성실의 원칙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관계를 저버리고 주식을 매도한 행위는 단순한 채무불이행을 넘어 배임죄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빗썸 사건의 당사자들은 거래소의 직원이 아닌 일반 이용자입니다.
단순히 이벤트 리워드를 받은 이용자에게 거래소와의 고도의 신임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지는 매우 정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매도 경위나 사고 인지 시점, 이용 약관상의 보호 의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만 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가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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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자산 매도자에 대한 법적 책임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의 계좌에 실수로 송금된 돈을 마음대로 쓰면 “횡령죄”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60조 원에 달하는 가상자산이 잘못 들어왔을 때, 이를 팔아 치운 행위는 법적 처벌의 망을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첨예한 입장이 대립합니다.
먼저, 대법원의 기존 입장(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에 무게를 두는 견해입니다.
대법원은 원인 불명으로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가상자산은 법정화폐와 달리 국가에 의해 통제받지 않으며, 디지털로 표상된 정보일 뿐 “재물”이 아닌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는 논리입니다.
익명성과 변동성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일반적인 자산과는 구별되므로, 형법을 적용할 때도 법정화폐와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변했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었고,
비트코인이 ETF 등을 통해 제도권 금융으로 급격히 편입되면서 그 경제적 가치에 대한 법적 평가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라는 거대한 플랫폼 안에서 시스템 이용자와 운영자 간에 이제 최소한의 “법적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 속에서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기소할 경우, 법원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유죄판결을 선고할 확률이 높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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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통제와 플랫폼의 법적 책임: 기술의 진보와 법적 신뢰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빗썸에 대한 현장 점검을 넘어 본격적인 검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플랫폼의 내부 통제 실패에 있습니다.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의 시스템은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즉시 기록되는 “온체인(On-chain)” 방식이 아니라,
거래소 내부 장부의 숫자만 수정하는 “오프체인(Off-chain)”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거래 속도를 높여주지만, 전산상 실수나 시스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 “유령 가상자산”이 생성되어
시장 전체를 마비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금융 신뢰의 본질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라스 다이아몬드는 “위임된 감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금융기관은 투자자를 대신해 차입자를 감시하는 필수적 역할을 수행하여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고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가상자산 플랫폼 역시 단순한 중개인을 넘어, 디지털 자산의 무결성을 지키는 “감시자”의 역할을 위임받은 존재입니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플랫폼이 짊어져야 할 위임된 감시의 책임은 무거워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술적 오류” 또는 “실수”라는 해명 뒤로 숨는 것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의 정합성은 법적 통제와 기술적 진보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삼성증권에서 빗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플랫폼 화면에서 마주하는 숫자가 때로는 모래 위에 지어진 신기루일 수 있음을 아프게 일깨워줍니다.
로버트 실러 교수는 시장의 거품과 붕괴가 인간의 심리와 서사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의 숫자가 현실의 자산을 잠식하는 광경을 보며,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풍요만큼이나
그 신뢰를 담보할 제도적 장치의 성숙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법은 기술의 뒤를 쫓는 그림자가 아니라,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합니다.
유령 자산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 자본시장이 진정한 신뢰의 대지 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다 엄격한 내부 통제 기준과 법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숫자”를 “믿을 수 있는 가치”로 바꾸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법무법인(유) 로고스 금융·조세 법률대응센터장
김형준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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