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 국민이 법정으로 들어오는 순간 - 허재은 변호사
등록일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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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일반 사선 변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국민참여재판이었다. 약 12년 동안 15건이 넘는 국민참여재판을 담당했으니 단순 계산으로도 매년 한 건 이상을 수행한 셈이다.
전체 형사사건 수에 비하면 그 비율은 극히 적다. 내가 수행한 2,000건이 넘는 형사사건 가운데 국민참여재판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반 형사변호사를 기준으로 보면 결코 적지 않은 경험이다. 실제로 상당 기간 형사사건을 수행한 변호사들 가운데서도 국민참여재판을 한두 차례 정도 경험하거나, 아예 경험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형사재판과는 다른 독특한 긴장감과 부담을 가진 절차라고 할 수 있다.
1. 제도 시작의 의미 - 법률전문가의 공간에서 국민의 공간으로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둔 제도이다. 일반 국민이 형사재판에 직접 참여하여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양형에 관한 의견까지 제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형사재판은 철저히 법률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판사, 검사, 변호인과 같은 법률가들만이 절차를 주도했고, 당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은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는 존재에 머물렀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재판의 실제 구성원으로 참여시켰다는 점에서 미국의 배심제에 버금가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식 배심제와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형사사건뿐 아니라 손해배상이나 의료과실과 같은 민사사건에도 배심재판이 폭넓게 활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형사사건에 한정된다. 또한 미국의 배심평결은 사실상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반면, 우리나라 배심원의 평결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 권고적 효력에 머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은 한국 형사사법 체계 안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재판이 단지 법률가들만의 논리로 이루어지는 절차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상식과 감각 역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2. 절차적 특이점 - 배심원 선정의 기술
국민참여재판을 여러 차례 경험한 변호사들은 흔히 “재판의 절반은 배심원 선정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는 배심원 선정 과정이다.
배심원은 해당 법원 관할구역 내에 주민등록을 둔 일반 국민들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다. 수십 명 규모의 배심원 예정자들에게 출석통지서가 발송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정된 기일에 출석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다. 실제 법정에는 통상 50명 안팎의 배심원 예정자들이 출석한다. 이후 무작위 추첨을 통해 우선 후보군이 구성되고, 검사와 변호인이 질문을 통해 배심원의 성향과 경험을 확인한다.
특정 배심원이 사건에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피신청이 이루어지고, 다시 추가 추첨과 질문 절차가 반복된다. 이러한 수차례의 질문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배심원단이 구성된다. 이 절차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검사와 변호인은 질문 과정에서 배심원의 가치관과 생활 경험을 파악하려 하고, 사건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배심원을 배제하려고 한다.
예컨대 교통사고 사건에서는 교통사고 피해 경험이 있는 배심원이 피해자의 입장에 강하게 공감할 가능성이 있다. 상습절도 사건에서는 자영업 경험이 있는 배심원이 피해 회복의 어려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린 피고인의 성장환경이나 반성 여부가 중요한 사건에서는 자녀를 양육한 경험이 있는 중장년층 배심원이 보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은 변론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심리전이 진행되는 구조이다. 어떤 국민들이 피고인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인지, 그 자체가 재판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국민참여재판이 효과적인 사건 – 국민은 어떤 사건에 설득되는가
국민참여재판이 항상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건의 성격에 따라서는 일반 재판보다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국민참여재판의 신청 여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 구조 자체에 대한 전략적 판단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배심원은 법률전문가가 아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법관, 검사, 변호사, 법원·검찰 공무원 등은 배심원에서 제외되고 있는데, 이는 법률적 전문지식보다는 일반 국민의 상식과 사회 경험을 판단의 기초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지나치게 복잡한 법리 다툼이나 전문적 지식이 핵심이 되는 사건은 국민참여재판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자본시장법 위반, 회계부정, 조세범죄, 기업형 경제범죄처럼 방대한 문서와 복잡한 법률구성이 중심이 되는 사건에서는, 일반 시민이 짧은 심리 과정만으로 사건의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이러한 사건에서는 재판부의 설명과 분위기가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국민참여재판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사실관계 자체가 핵심 쟁점인 사건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의 의미가 커진다. 폭행, 상해, 정당방위, 성범죄, 교통사고, 명예훼손과 같이 일반인의 생활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된 사건에서는 국민들의 상식적 판단이 실제 재판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이 전략적으로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① 피고인의 억울함이나 사건 당시의 구체적 상황 설명이 중요한 사건, ②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 신빙성이 핵심적으로 충돌하는 사건, ③ 일반인의 상식과 사회적 경험에 비추어 판단할 여지가 큰 사건, ④ 피고인의 반성, 성장환경, 범행 경위와 같은 인간적 요소가 양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 등이다.
4.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본질 – 법과 사회의 연결
실무상 흥미로운 점은 판사들 역시 사실인정이 핵심이 되는 사건에서 배심원의 의견을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법률전문가인 판사들 또한 “일반 국민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중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는 단순히 재판 절차에 시민이 참여한다는 형식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법률전문가들 사이의 논리 경쟁만으로 이루어지는 절차에, 국민의 상식과 사회적 감각이 실제 법정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국민참여재판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법조문의 해석만이 아니다. 물론 법률은 재판의 기본 기준이 되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인간의 행동과 동기, 당시의 상황, 그리고 사회적 맥락까지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 특히 피고인의 행동이 일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사회 구성원들이 그 행위를 어느 정도 납득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지가 재판의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제도적으로 드러내는 절차라고 볼 수 있다. 즉, 법률적 판단과 함께 사회 일반의 상식과 가치관이 재판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인 것이다.
또한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의 신뢰성을 높이는 기능도 가진다. 재판 결과가 오직 법조인들만의 판단으로 이루어질 경우, 일반 국민은 때때로 판결 과정을 어렵고 폐쇄적으로 느낄 수 있다. 국민이 직접 재판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재판은 보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인식될 수 있고, 판결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재판이 사회 전체와 단절된 전문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국민참여재판 신청 여부는 단순히 “유리한가 불리한가”의 문제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의 사건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사건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법률적으로만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참여재판은 단순한 재판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법과 사회가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장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5. 결론 - ‘국민의 눈으로 본 정의’를 향하여
국민참여재판은 모든 사건에 무조건 적합한 제도라고 볼 수는 없다. 국민참여재판의 활용 여부는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과 쟁점을 얼마나 정확히 분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실관계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납득 가능성이 중요한 사건일수록 국민참여재판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피고인의 입장과 사건의 맥락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은 단순한 재판 방식의 하나가 아니라, 법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